no.1
오징어 덮밥과 올림픽


2018년도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미천한 몸뚱어리를 덮고 있던 담요를 벗어 던져 두고 뒤를 돌아서니 한계인 듯 사정 없이 휘몰아치는 배고픔을 채우기 위해 오징어 덮밥을 먹으러 밖으로 향했다. 본인에게 오징어 덮밥이라고 한다면, 가을마다 돌아오는 우리 아버지의 치통 마치 1-2주에 한 번씩 식욕을 당기게 하는 게, 감히 병리적이라 할 수 있다. 오징어 덮밥을 먹으러 갔을 때 우리가 생각해야 할 점은 단 하나이다. 바로 오징어의 신선도, 그 가게의 분위기, 밑반찬, 요리에 쓰이는 양념 등등 한 요리를 구성하는 요소들은 매우 다양하지만 이 오징어덮밥에게 신선도란 주인장과 주방장이 이 요리를 대하는 자세와 손님을 위한 칼 같은 결단력 등등 매우 많은 의미를 함의하고 있기에 신선도의 확인 유무는 매우 중요하다 볼 수 있다.



식당에 들어서 언제나 그랬듯 아주머니께 검지 하나를 치켜 새움과 동시에 눈빛 교환을 한 후, 빠르게 주방으로 들어가시는 아주머니를 가만히 보고 있자 하면 왠지 모를 잔잔한 흐뭇함이 밀려온다. 오징어덮밥의 온기가 여섯 시 간의 물레질로 이미 퉁퉁 불어있던 손가락 마디를 지나 잔뜩 움츠려있던 몸을 풀어주고 저항감 있는 오징어의 뽀득한 식감은 오늘 하루를 마감하기에 충분한 만족감을 준다.

식사 중에 켜져 있는 tv를 무심코 보았다. 올림픽 개막식이 나오고 있었다. 무대 위에서는 강박적인 단색 비율의 옷을 마치 짜기라도 한 듯 맞춰 입고 온 아이들을 중심으로 백호, 사람 탈을 쓴 새와 덩실덩실 춤을 추는 모습이 순수함과 화려함이 함께 공존하는듯했다. 태극기 개양 후 올림픽 개막식의 백미 인 각국의 선수단의 입장을 시작하였다. 그다음으론 아까 연습대로 열심히 움직여주던 다섯 아이들이 나와 비둘기 모양의 풍선을 하늘로 올려보냈는데, 가만 생각해보니 과거 88서울 올림픽 성화 점화의 순간 성화 대 위 예상치 못한 비둘기 화형식을 기억함과 동시에 당시 그 참사를 지켜봤던 전 세계인들과 우리 국민들에게 심심한 위로의 의미가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게 아닐까 하는 허튼 생각에 빠졌다. 각설하고 마지막 성화봉송의 주자인 김연아 양의 아름다운 턴과 함께 성화봉을 들고 점화를 하는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달 항아리? 순간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분명 올림픽 준비 관계자들 중 디자인 담당자가 성화대 디자인을 고안중 전통예술계에 자문을 구했든 아니면 자신이 직접 찾아냈든 나름 우리의 것을 표현하기 위해 나름 애를 쓴것 같았다. 그리고 입 밖으로 나온 외마디.

씨빨 SSIBBAALL

한국에서 전통 공예를 공부하다 보면 꼭 거치는 곳이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역사적인 자료와 과거 우리 조상들의 수려한 기술력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배우는 입장에선 형태감을 키울 수 있는 아주 좋은 장소이다. 과거 한 작가님이 이를 두고 나에게 기생집에 제집 드나들던 김유신처럼 국립 중앙 박물관을 자주 가야만 실력이 늘 수 있다 하셨는데, 분명 작가님은 말위에 술이 취한 채 귀가 중 말이 기생집에 도착하자 말의 목을 베어버린 후일담까지는 작가님의 귀까진 도달하지 않은 모양이다.  

어쨌든 나는 그곳에 가면 상감 작품을 유심히 보곤 한다. 그런 반면 같이 가는 사람들을 매번 모여들게 하는 작품이 있다. 바로 달 항아리. 흰 바탕을 중심으로 이루고, 형태가 마치 보름달을 닮았다고 하여 항아리 앞에 달을 붙이는 100년에 한번 나올만한 고차원의 작명 센스를 엿볼 수 있다. 달 항아리의 묘미라고 한다면 색감 보다는 형태를 들 수 있는데, 제작 과정이 다른 항아리와는 다르게 두 개의 큰 그릇을 위아래로 포개어 붙인다. 그러면서 이음새에 자연스러운 뒤틀림이 발생하여 완벽한 정형보다는 비정형을 띄는데, 이를 두고 일부 평론가들은 각도에 따라 달리 보이는 이 달 항아리의 매력 요소라 칭하고 있다.

큐레이터의 말을 듣던 중 문득 달 항아리의 용도와 발생 시가가 궁금해, 질문 시간에 물어 보았더니 달 항아리는 조선 후기의 숙종 말부터 정조 재위 때 잠깐 등장했고, 용도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집에 돌아와 각종 달 항아리에 관련된 자료를 찾아봤다. 용도에 관한 똑 부러지는 자료는 없었다. 생각 해본 바, 18세기에 무언가 담을 수 있는 용기를 생각해 본다면 별다른 선 택지가 없는데, 나무로 만들거나 흙을 구워 도자기를 사용하는 방법 외에는 한정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대다수의 가정에서 나무 용기와 도자기는 필수적이었다. 동시에 알 수 있는 것은 당시에 전문 기술을 사용하여 만든 도자기의 용도는 한정적이고, 분명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 결과 과거 달항아리의 용도에 대한 가장 신빙성있는 답은 장작가마에서 알 수 있다. 본래 장작가마에 기물을 놓고, 불을 지피기 시작하면 내부에선 공기에 흐름이란게 생겨 난다. 그 흐름이 기물이 놓여진 위치에따라 구워진 도자기의 강도나, 표면이 달라지기에, 가마 내부에 일정치 못한 빈 공간이 생겨버리면 어느 한쪽은 공기의 흐름이 빨라지기에 아무리 같은 흙 기법을 사용하여 제작을 한다 하더라도 한쪽만 심하게 타는 변수가 발생한다. 그런 가능성을 방지하기위해 빈공간을 채움과 동시에 화력을 견딜 수있는 것이 필요했는데 그게 바로 달항아리였던 것이다.

몇 가지 단순 추론의 여지는 있다. 하나씩 살펴 보자면, 당시 시대 상황을 고려했을 때 달 항아리는 너무나 조악한 형태와, 어설픈 마감 그리고 장식의 부재와 단순함에 있어 왕실도자의 소모품으로 쓰였다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 다른 한 가지 가능성은 곡물 보관을 위한 도자기다.하지만 이 용도도 이미 뒤주라는 목기로 대체 가능하고, 오히려 목기가 곡물을 보관할 때 기능적으로도 용이하기에 굳이 도자기로 대체할 필요도 없다. 또한 여타 동시대에 발견된 서민용 항아리에 비하면 주둥이의 크기가 무언갈 넣고 꺼낼 때 매우 비효율적인 크기이고, 애초에 지름 40cm에 육박하는 크기를 주방에서 사용했다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당시 도공들의 작업 프로세스는 지금과는 거리가 매우 멀었다. 흙을 반죽하고 정제하는 사람, 형태를 만드는 사람, 굽을 깎는 사람, 기물을 굽는 사람 등등 철저하게 분업하여 도자기를 만들어 냈다. 그런데 당시 하층민에 속해있던 도공들이 만들어낸, 세부적인 공정을 거친 도자기의 목적이 불분명하다는 건 현실성이 떨어진다. 그래서 나는 이도자기의 사용목적의 시선을 달 항아리를 굽고 난 후가 아닌 굽기 전으로 되짚어 봤다.

그렇다면 당시 공간 때우는 용도의 달 항아리가 어떻게 백자대호라는 칭호가 붙고 올림픽 성화대의 가장 높은 곳까지올라가 오징어 덮밥을 먹던 나에게까지 전달이 된 것일까. 이제 지겨울 정도이다. 항상 그래왔듯 한국의 언론과 그 언론을 보고 그대로 믿는 사람들은 외국에서의 언급이나 칭찬 비스름 한 것에 아주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달 항아리가 공식적으로 처음 해외에 나선 것은 1935년 도예가와 수집가를 겸하고 있던 영국의 버나드 리치에 의해서 소개되었고, 현재 영국의 박물관에 전시하고 있다. 그 이후로 일본에서 한 작은 백자 전시를 바탕으로 적은“일본인도 극찬, 경외, 놀라움을 감추지 못함” 유의 기사가 옮겨져 달 항아리 한 점당 적게는 몇백에서 몇천, 많게는 억대까지 몸값이 치솟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는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자신의 개성과는 무관하게 달 항아리 제작에 몰두하게 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언젠가 한 평론가의 달 항아리에 사랑으로 가득 찬 글을 봤다. 그 내용 중에는 버나드 리치와 그의 절친한 친구이자 동양과 서양 미학에 대해 같이 연구하던 일본의 야나기 무네요 애 대한 언급이 있었다. 그는 달 항아리를 보는 둘의 시선이라며 글을 이어갔는데, 버나드의 안목과 당시 우리의 보물을 미처 알아보지 못하고 해외 반출을 했다는 사실과 동시에 민예품 수집으로 유명하던 야나기 무네 요가 왜 달 항아리를 한 점이나 수집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적혀있었다. 그 평론가님의 의문을 해소해 드릴 수 있을 것 같다. 자고로 민예품이라 하면 목기, 민화, 도자기 등 민간으로 전해져 오는 민속 “예술품”을 칭한다. 즉 시간이 지날수록 예술품에 대한 가치가 형성 되는 것이 아닌 당시에 이미 예술품으로 쓰이고, 통용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달 항아리를 구매하지 않았던 이유는 지름 40cm의 큰 크기나 좋지 못한 마감, 좋은 달 항아리를 만날 기회가 없었던 것이 아닌, 그럴 가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맥락을 이어 결과적으로 한국의 특성상 도예전공자의 열에 아홉은 조형, 나머지 전통 도예를 제작하던 소수 도예가들도 달 항아리 제작에 전향하여 다양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글을 쓰던 중 문득 나는 달 항아리가 유명해짐과 동시에 값이 올라가는 과정에 영감을 받아, 현시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외식업에 종사 중인 분들에게 대한민국에서 맛집으로 거듭나는 쉬운 방법을 알려드리기로 마음을 먹었다.

1. 대한민국에서 의미 부여는 모든 것이다. 특별한 재료로 만들지 않았어도 기죽지 말고 그럴싸한 의미로 승부하도록.

2. 한국인들은 광고에 굉장히 예민하다. 몇몇 가게들은 블로그와 sns를 이용하지만 우리들은 그런 방식보다는 시대의 흐름에 맞춰 유튜브라는 영상매체를 이용해 광고를 할 것이다. 유튜브를 이용한 광고를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준비가 필요하다.- 리액션이 좋은 잘생긴 백인이 필요하다. 흑인도 최근의 인식 변화로 다소 긍정적이지만 가능한 백인을 섭외할 것. * 동남아 계열의 사람을 선택하는 것은 한국인들이 보는 광고에는 적합하지 않다. 단, 베트남이나 태국 요리 음식점이라면 긍정적임.- 한국 문화에 대한 객관적이고 현실적인 시선을 가진 외국인은 적합하지 않다. 깨어있는 외국인은 한국인에게 미움을 살 수 있으니, 우수하고 선진적인 한국의 문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 외국인이 적합.- 매운 걸 잘 먹어선 좋은 반응을 얻기 힘들다


3. 식재료중 하나를 택해 정력에 탁월한 효과가 있음을 광고를 한다. 단, 이방법은 생각보다 소요시간이 길기에,장이나 젓갈을 담는 마음으로 길게 기다린다.



다시 돌아와서 400년이 훌쩍 지난, 이후 아무런 기술의 발전이나 응용 없이 만들어낸 도자기라 할지라도 현대에 들어와서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봄과 동시에 그 가치에 변화에 관한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결정적으로 개인이 마음에 들면 그것이 2000만 원이든 1억이든 살수 있다. 단, 이런 성장된 가치와 변화된 시선의 근간은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그리고 이 근간은 현대에 들어와 달 항아리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 현재의 달 항아리를 구성하는 근거들은, 언급한지의 사실 여부조차 모를 일본인들의 극찬과 그것을 옮겨 퍼나른 기사들이라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것들이 모여 가상의 우리만의 백자대호를 만들었고, 결국 올림픽 성화대에까지 올려버리는 일이 일어난 것이라고 생각한다...







no.2
햝음의 역사


나는 댓글을 자주 본다 어떤 기사를 보든 영상을 보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바가 나와 같은지, 다른지, 다르다면 어떻게 다른지가 바로 바로 올라오기에 호기심 꾸러기인 나로선 너무 궁금하다. 사실은 이 땅에 얼마나 많은 병신들이 키보드 앞에서 인생들을 낭비하는지 관전의 목적이 더 크다 (내가 그들과 같은 한 무리라고 생각했다면 당신은 이미 날카로운 통찰력의 소유자).

주요 포털과 영상 매개를 보면 국뽕이라는 단어 혹은 해당 뉘앙스의 댓글 혹은 기사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2010년 초 당시 한국 언론은 합이라도 미리 맞춘 듯 뚜렷한 경향을 비추었다. 그 현상은 특정 언론의 규모나 정치적인 색과는 상관없이 명징하게 하나의 주재로 통일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보수와 진보의 언론매체의 극명하던 대립을 보였던 당시로선 꽤나 이례적인 현상인데, 마침내 언론의 이견 없는 단합이 이뤄졌다는 점에서 매우 기뻤지만 동시에 그 단합 아래 우직하게 자리하고 있는 국뽕을 마주한 순간 마침내 변비에 고통에서 벗어나 쾌변의 기쁨에 잠긴 나와, 해서는 안 될 장소에서 비둘기를 힘차게 날려버린 나 자신을 동시에 발견한듯한 찝찝한 이올라왔다.


그 시작은 “두유 노 아무개”에서 좀 더 본격적으로 정체를 드러낸다. 대표적으로 싸이의 강남스타일과 스포츠 쪽에선 박지성을 들 수 있다. 해외 유명 인사가 방한을 하면 항상 들려오는 이 온 패턴의 질문 세례로 만들어진 기사들은 양과 질의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 하는 대한의 기자들로 인해 과장과 왜곡으로 변모해갔다. 그들은 본인들의 가족관계나, 재산 규모마저 알고 있느냐 하고 물어볼 기세로 달려드는데, 나는 저런 유의 기사가 넘쳐난 후로 어떤 이가 한국을 방문한다고화제가 되면 이제는 어디까지 물어볼까 하는 불안에 휩싸였다.그들의 방법은 다음과 같다. 일반적으로 한국에 오는 유명 인사들은 큰 이유가 없는 한 인터뷰 중에서는 우호적인내용의 인터뷰를 이어나가기 마련이지만, 예를 들어 해외 스포츠 스타가 우리나라의 선수의 플레이나, 스타일을 모른채 인터뷰를 한다고 치자. 이런경우 우리들의 기자들은 “000, 한국의 스포츠스타 아무개를 환상적이라 극찬” 따위의 기사를 마른고목에 물을 젹셔 싹을 피워내듯 써내리면 그만이다. 이의 경우는 비단 스포츠계 뿐만아니라정치 및 사회란 등 각종 한국의 사회 전반에 깔려있는 우수함을 강박적으로 자각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마치 억지미소을 짓는듯한 느낌마저 들게한다.



이런 현상을 보며 필자는 실로 안타까웠다. 이렇게 문학적 상상력과 소양을 갖춘 예비 문인들이 수두룩한데 이미 문학및 문예는 쓸모없는 것이라며 기정 답을 내어버린 한국의 교육계가 원망스럽기까지 하였고, 심지어는 그들의 존재를 미리 알아챈 일부 문학계에서 수익의 배분과 더불어 더 이상의 경쟁을 우려하여 자라나는 새싹들을 지르밟는 얄궂은 행태가 아닐까 하는 음모론까지 생각하는 지경까지 빠졌다.




본인이 생각하는 댓글의 매력은 시시각각 올라오는 실시간의 성격과 띠고 있다는 것과 좀 더 멀리서 보면 그 당시 사회적인 분위기가 같이 공존한다는 것이다. 아까부터 댓글 하나 가지고 뭐 그리 의미 부여를 하나 싶겠지만, 2차 성징과 같이 시작된 네티즌의 (실로 오랜만에 쓰는 단어이다. 놀랍게도 네티즌이 신조어로 불리던 시대가 있었다.) 삶이기에 나에겐 친정집 같은 공간이다. 살면서 자신이 쓸데없는 것에 몰두한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었다면 던지던 돌을 내려놓길 바란다. 다시 돌아와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근래 약 8년 동안 두드러지게 변화된 특정 댓글들이다. 언젠가부터 댓글과 넷상에 “헬 조선”이라는 단어가 보이질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자리를 국뽕이라는 단어가 메꾸고 있는데, 두 단어의 근본적인 성격은 완벽하게 반대이다.

먼저 헬 조선이랑 단어는 2010년대 초반에 만들어진 인터넷 신조어로 지옥을 의미하는 엘과 조선의 합성어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희망보다는 지옥에 가깝다’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로 쓰였다. 당시 헬 조선이라는 단어와 함께 가장 두드러지게 거론되었던 수저론은 “Born with a silver in one’s mouth.”라는 표현에서 유래하였는데, 위의 표현은 유럽 귀족층의 아이가 태어나면 유모가 젖을 은 수저로 먹인다는 풍습에서 따온 것이고, 태어나자마자 특정 자녀는 부모의 경제력으로 사회적인 위치와 정해진다는 이론이며, 당시 사회 기저에 깔려있던 무기력을 더욱 가중 시키는 역할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해를 거듭할수록 최악을 갱신하는 국회와, 전 국민 모두가 지켜본 어린 학생들의 참사는 국민들로 하여금 자신이 살고 있는 나라에 대한 믿음에 금이 가기엔 충분했다.



당시 한국의 사회는 자신감이 많이 떨어져 있는 상태였다. 안전을 보장해 주지 못하는 국가와, 더 이상 애국의 요소는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나라를 사랑해야 할 이유를 찾아내야 했다. 국뽕이란 단어는 국가 그리고 마약을 뜻하는 뽕을 합성한 단어로, 국가에 심취한듯한 마치 마약에 빠진 것처럼 분별력 없는 상태의 지지를 의미한다. 국뽕이라는 단어의 태생 자체가 다소 쿨하지 못한 성격을 띠고 있지만, 한편으론 씁쓸하지만 어떻게든 우리들의 자신감을 회복하고, 더 좋은 삶을 살기 위한 목적의 생존력에서 비롯된, 새롭게 만들어진 범국민적 정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빠졌다.







no.3
마침내 불다 못해 터져버린 엉덩이
내가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능력 대비 고효율을 올리는 직업 중에 근 몇 년간 빠르게 성장한 유튜버라는 직업이 있다. 유튜버란 게 과거 직업란에 오르는 것도 무엇 있기 어색했는데 몇 년 전부터 “크리에이터”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좋은 예로는 탈세 크리에이터, 자가격리 수칙 어김 크리에이터가 있겠다) 유튜브가 성장함에 따라 자연히 유입도 많아지고, 그와 동시에 콘텐츠의 폭이 넓어졌는데 그중 눈에 띄게 성장한 컨탠츠가 있다. 바로 국뽕. 종류는 여러 가지이다 단적으로는 외국인의 k-pop 뮤직비디오나 공연의 영상을 보는 리액션 역상을 비롯해 한국의 음식을 먹는 외국인의 반응 같은 종류들이 있다.

기묘하게도 이런 영상들로 인해 파생된 2차 창작 영상들도 있다. 그중 인상 깊었던 것은, 외국인의 리액션 영상을 리액션 하는 영상이 있었는데 가만 생각해 보니 액자식 구성을 사용하여 시청자로 하여금 내화의 맥락의 정당성과 신뢰도를 높이는 효과를 치밀하게 계산한 것이었다. 과연 이런 소소한 내용을 담고 있는 영상에서도 문학적인 기본은 잃지 않는 제작자의 세심함과 타협하지 않음을 느꼈고, 21세기 영상제작자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체험했다. (영상진흥 위원회 파이팅!)

최근 유튜브에 대한 규제 및 수익을 얻는 구조가 세부화됨과 동시에 대중들은 그에 따른 투명성을 요구하기 시작했는데, 마치 터질게 터진 듯 여러 사건들이 차례로 무너지는 도미노처럼 우수수 나왔다. 한국이란 나라에서 월 몇천에서 몇억까지 오가는 이 “동판”이 영원히 깨끗하게 운영되는 것은 바라지도 않았고, 심지어 일부 당사자들의 양심과 도덕적 수준이 평균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걸 과거에도 쭉 느껴왔던 본인은 이러한 컨탠츠를 소비하는 어린 학생들에게 초래되는 악영향이 걱정되는 것 외에는 이 사태가 그리 놀랍지는 않았다. 최근 한 국뽕유튜버가 한국에 아내와 함께 입국해, 자가격리 수칙을 어겨 논란을 빚었다. 그와 동시에 그의 아내가 건보료 납부 관련한 논란도 있어 기존의 몇백만 명의 애청자들을 연거푸 실망시켰는데, 그 사태를 보며, 그래도 장문의 글로 사과를 하고 한 달 편히 쉬다 오면 논란은 쉽게 식어버리는 것이 통상적이기에 지켜보던 차, 사과문이 올라온 걸 봤다. 한국어와 영어로 적힌 사과문을 함께 올렸는데, 둘의 중요 내용이 달라 다시 한번 논란을 만드는모습을 보고, 굉장히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그들의 어리석은 대처를 보며 합리적인 의심 몇 가지를 나열해 봤다.

1. 글을 올린 당사자는 악플을 읽으면 흥분을 하거나, 힘든 삷을 이어나갈 수 있는 촉매제로 악플을 애용한다.

2. 대다수 한국인들의 영어 문장 해독력을 과소평가해, 이를 기회로 해외 시청자를 속이려 든 것이다.

3.컨탠츠 소재의 고갈을 느낀 나머지, 기존 미취학 아동 수준의 밝은 느낌을 버리고 완벽하게 흑화를 해버리는 선택을한 것이다. (자매품으로 “저는 사실 페미니스트였습니다”와 돌연 가세요 출연 등이 있겠다.)

4. 유튜브 시작부터 한국에 대한 특별한 감정 없이 그저 쉬운 돈벌이로 생각함.

다시 돌아와 그들의 최근 영상의 댓글을 보면 비난의 여론이 상당 부분 차지하지만, 아직도 그들의 입장을 옹호하고 선처를 강하게 바라는 사람들 역시 존재한다. 가히 같은 핏줄이 아닌 면 못할 큰 그릇의 소유자들이다. 그들은 마치“어서 다시 돌아와 내가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한국의 장점들을 마구 핥아줘”라는 듯 오매불망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no.4
我是韩国人 ( I’m Korean )


나는 영화를 좋아하는 친구들과 함께 속된 말로 뭣 같은 영화를 찾아보는 더러운 취미가 있다. 어떤 영화가 어떤 식으로 뭣 같은지 지적질 하는 재미가 꽤나 쏠쏠하기 때문이다.

주제에서 잠시 벗어나 당시 본 영화 한 편을 소개하여 고한다. 중국 내에서 매우 좋은 수익을 올렸고 중국인들 가슴 한편에 뜨거움을 선사한 이름하여 “특수부대 전랑 2”가 그 주인공이다. 영화에서의 몇몇 장면들을 살펴보자면 침대 매트리스의 용수철로 미사일을 가뿐히 튕겨버리는 주인공은 호탕한 성격의 소유자이며 백인 흑인 인종에 상관없이 그를 좋아하는듯했고, 영어가 유창하지 않지만 소통이 가능해 보였다. 또한 그들이 생각하기에 무릇 세계인의 인기인은 스포츠와 술을 잘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축국과 술로는 당해낼 자가 없다고 묘사되고 있고, 무장을 한 아프리카인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비무장한 중국인 들이 “위 아 차이니스"라는 말과 함께 마치 나는 너희를 구하러 온 거지 싸우러 온 게 아니라는듯한 자애로운 미소를 띠는데 사실 본인들의
국적을 밝히는 순간 순식간에 벌집행 될거라고 생각했던 나의 예상은 보기좋게 피해갔다.

이 영화는 우리나라에서 나오는 명절용 국뽕 영화보다 좀 더 본격적이고 좀 더 잔인할 뿐 그저 그들은 유명 배우 한 명을 필두로 자신들이 원하는 중국의 이미지를 마구 넣었다. 그 결과 영화는 당연히 부실해지고 고증이나 스토리는 옆집 개인 덕구에게나 줘버린 상태가 되었다. 그중에도 가장 화가 났던 점은 그 뒤틀린 이상향 하나를 빌드 업하기 위해 소비된 표현방식이 정말 개 같다는 것이다. 이 영화를 보면 평소 중국이란 나라가 아프리카인과 아프리카 대륙의 국가들을 얼마나 하등 한 존재로 생각하는지 바로 알 수 있다. 극 중에서 아프리카인들은 그저 구원자인 중국인들에게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고, 총격 신에서는 과하다 싶을 정도의 사살 장면이 매우 많다. 또한 의문이 들 정도로 자세히 표현되어 있다. (감독의 세심한 배려인 걸까) 물론 총을 맞고 벌집 신세가 되는 것은 아프리카인이다.

최근의 여러 매 채와 몇 년 사이 나온 한국 영화들의 분위기를 보면서 이런 유의 뉘앙스가 적지 않게 느껴졌기에 이 영화 이야기를 꺼내었는데, 난 위의 영화 전반에 깔려있는 이 중화사상이란 것이 우리에게 그리 멀지 않다는 것을 최근느끼고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냉소적인 자세는 기피하는 편이다. 아무 근거 없이 모두 잘할 수 있다 하는 것은 과도한 희망이란 것을 알지만 그래도 이왕 살 거라면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마인드로 살고 싶다. 한편으론 삶을 살면서 어느정도의 냉소적인 태도가 무언가를 할 때 자신의 위치와 능력을 냉정하게 파악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것에는 매우 동의를 하기에 자기검열 차원에서는 일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글을 마치며....




본인은 똘아이질량 보존법칙을 굉장히 신뢰하는 편이다. 이는 질량 보존의 법칙과 사회생활에 찌든 사회인들의 스트레스가 마치 원기옥처럼 모여 만들어진 개념인데, 쉽게 말해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어느 공동체에 속하더라도 높은 확률로 해당 공동체의 총인구 대비 일정 퍼센트의 똘아이들을 목도할 수 있다고 한다. 이 개념의 방점은 아무리 자신의 주위를 찾아봐도 정상인 밖에 없다면 그 고민을 하는 자기 자신이 똘아이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에서 찍힌다. 이제는 정말 총알쯤은 손가락으로 튕기며 적에게 정의를 구현하는 한국형 히어로 영화가 나오는 사태를 직면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 대참사를 막기 위함과 동시에 우리의 올바른 컨탠츠 소비를 위하여 냉정한 평가와 더불어 사고의 유연함은 불가피한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