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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lhee Baek
알렉스 안녕하세요! 먼저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Alexander Isacc
안녕하세요.뉴욕에서 태어나서 8년째 한국에 거주 중이고 영상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는 딸바보 알렉스라고 합니다.
SH
알렉스는 한국에 사는 외국인으로서 키너와도 비슷한 입장이라고 생각해요.
AL
키너가 가진 이방인이라는 관점과 외국에 사는 한인들의 이야기인데 내게 인터뷰 요청이 와서 나는 한국인이 아닌데 괜찮을까 싶었어요. 나는 내 존재가 애매하다고 생각한 적이 많았거든요.

지금은 약간, 웃긴 말일 수 있는데, 가끔씩은 내 정체성이 반칙이라고 생각했어요. 나는 미국 사람인데 엄마는 한국 사람이었고 그래서 한국 사람이냐고 물어보면 한국 사람이 아니라고 했죠. 하지만 엄마는 한국 사람이라고 하면 그럼 한국 사람 맞지 않냐고 하는데, 제 생각 자체는 미국인이에요. 한국말을 할 수 있고, 문화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지만, 한국 사람이라고 하기엔 내 정체성이 혼란스럽다고 할 수 있죠.
SH
한국말을 정말 잘해요. 한국사람이 아니라고 하지만 정말 편하게 이야기하거든요.
AL
미국에서 태어나 대학을 졸업한 후 한국에 8년째 살고 있어요. 한국에서의 경험을 말할 땐 한국말이 편하고, 어린 시절을 말할 땐 영어가 편해요 제가 프로덕션 다닐 때, 방송국을 다닐 때, 한국에서 사기당할 뻔했을 때처럼 한국에서 겪은 상황을 말할 땐, 한국말이 편하고 영어로 설명할 때는 어렵죠. 뉘앙스가 살지 않아서. 나도 영어 원어민이지만, 그런 디테일들은 한국말이 더 편할 때가 있어요.근데 난 한국 사람이 아니니까 애매하죠.
SH
알렉스가 말하는 한국 사람이 아니라는 말은 국적에 대한 이야기일까요?
AL
그런 것도 있지만, 말 그대로 한국 사람들은 나를 볼 때 한국 사람이라고 생각 안 하죠.
SH
알렉스 자신이 애매하다는 생각을 어릴 때부터 했었나요?
AL
나는 뉴욕 한인타운에서 자랐다. 주변에 한국 사람들이 있었고, 한인교회를 다녔어요.
전부 교포 2세들이라 한국말을 못 했지만 외모는 다 한국 사람이었죠 그래서 저만 달랐어요.
저는 어린 시절 기억은 많이 나지 않지만,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내가 다른 아이들과 생김새가 다르다고 생각하게 됐죠.  그래서 어릴 때부터 왕따는 아니었지만 내가 그들과 다르다는 어떤 것들을 느꼈죠. '얘만 다르다'가 좋을 때도 있긴 했어요. 내 자리가 다른 데 있다고 생각했고 여기는 아니라는 생각을 했어요. 미국은 워낙 다양했기에 학교에선 애매하단 느낌을 받지 않았지만 한국 사람들과 있을 때는 한국 사람이 아니라고 하고, 외국 사람들에겐 나는 한국인이었어요. 내가 그들 눈에는 한국인으로 보인다고 했고 한국 사람들에겐 이집트인으로 보인다고 하더라고요.
SH
다르다는 걸 느끼고 어떤 시도나 노력을 해 본 경험이 있나요?
AL
노력은 있었지만, 한국어를 배우려고 하진 않았어요. 한국 2세 친구들도 한국어를 못했으니까 같이 영어로 대화를 했었죠. 그 당시 우리 동네에선 농구를 많이 해서, 제가 부족하다고 생각하거나 다르다는 걸 농구를 통해 인정을 받으려고 했었어요. 자신감도 생기고 부족한 부분이 커버된다고 생각했죠.
SH 
혼란스러웠을 것 같아요.
AL
어머니는 한국인, 아버지는 이집트인, 나는 미국인이어서 정말 혼란스러웠어요. 그리고 저는 이집트에 대해 진짜 아무것도 모른다. 저는 이집트나 한국에 대한 정체성에 대해서 생각할 때 음식이라고 생각했어요. 어떤 때는 이집트 음식, 어떤 때는 한국 음식 그때마다 난 한국 사람, 이집트 사람이구나 생각했죠. 인도 친구 집에 가면 인도 음식을 먹고, 중국 친구 집에 가면 중국 음식을 먹으니까.
SH
알렉스는 어린 시절부터 새롭고 낯선 것들을 자주 마주쳤던 것 같아요. 알렉스에게 “낯설다”라는 말이 가진 의미가 있을까요?
AL
처음에 그 단어를 생각할 때 사람에 대한 표현인 줄 알았어요. “낯설다”, “낯설어”는 사람에 대한 단어라고 생각했죠. 낯을 가린다는 말처럼. 이 표현을 한국에서 많이 듣다 보니 한국 사람들은 낯선 사람을 만나는 게 싫은가 보다 했어요. 나는 반대였거든요. 새로운 사람 만나는 게 즐겁고 그 사람에 대해 알아가고 대화하는 게 좋아요.
SH
공간 혹은 시간, 삶에 어떤 익숙하지 못한 불편함을 느낄 때의 낯설다는 느낌은 받아본 적 있지 않나요?
AL
있어요. 저는 가끔씩은 어떤 행사나 파티에 초대받으면 많이 낯선 곳이라 뻘쭘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민망할 때가 있어요. 그 느낌 자체가 싫은데 억지로 가려고 오히려 노력해요. 갈 때마다 그런 불편함들을 이겨내려고 해요. 내가 이런 곳에 있어도 될까, 나를 위한 자리가 아니라는 생각도 들때도 있어요.
SH
낯섦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나 느낌을 가질 수 있는데, 알렉스는 오히려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AL
저는 한인들과 있었지만, 다들 미국 사람이었기에 그렇게 낯설거나 어렵다는 느낌을 받지 않았어요. 오히려 제가 어렸을 때 한국에 있었다면 더 크게 낯섦을 느꼈을 것 같아요.
SH
그렇다면 알렉스가 처음 한국에 어떻게 오게 되었나요?
AL
그 당시엔 순수한 마음으로 한국에 오게 되었어요. 한국에 오게 된 이유는 한국말을 못 해서, 한국 시골에서 한국어를 배워오겠다고 생각했죠. 한국말을 못 하는 게 싫었다.

우리 엄마가 한국 사람이라고 할 때 한국말 할 줄 아냐 하는데 못한다고 하는 게 너무 싫었다. 춘천에서 1년 동안 살았는데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없었어요.
(그래도 대학시절 부전공으로 한국학을 전공해서 기본적인 대화가 가능했다.)

인상 깊었던 기억은 길을 건너고 있는데 아저씨들이 나를 보고 "I love you"라고 말하는 게 너무 재밌었죠. 제가 뉴욕에 있었을 때 처음 다른 나라 언어를 쓰는 건 주로 욕이었을 텐데 (모든 언어는 욕을 먼저 배우니까), 춘천(한국 시골)아저씨들은 할 줄 아는 영어라도 하고 싶어 보였어요. 제게 I love you라고 하는 모습에서 한국 사람들이 순수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한국이 순수하고 착하다고 느꼈죠.
SH
한국에 대한 첫 이미지가 참 좋았던 것 같아요. 지금도 그런가요?
AL
아니, 그럴 수가 없었죠. 현실이 있었어요. 서울에서 삶을 시작하면서, 방송국에서 예능 프로그램 막내로 7개월 동안 일을 한 적 있었는데 정말 힘들었어요.

방송국에서 일했을 때 나는 ‘이곳에서 어울리지 않는구나’를 깨달았죠. 위에 있는 선배들도 내게 “여기서 일할 수 없다”, ”너한테는 PD는 시키지 않을 거야 너는 다르니까”, “예능은 한국적인 거라서 넌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넌 될 수 없다” 라고 했어요.

속으로는 어차피 그렇게 되고 싶지 않은데, 그냥 뭐라도 배우고 싶었다. 밤새 방송국에서 편집하면서 살고 싶지도 않았고 그런 선배들처럼 되고 싶지도 않았지만 정말 뭐라도 배우고 싶었어요.  그 중 하나 에피소드는 주말 방송이라서 주말은 밤새 작업을 하는데, 너무 씻고 싶었는데 순서를 지켜야 했는데 선배가 와서 먼저 씻으라고 해서 씻었는데 다음 선배가 와서 왜 먼저 씻었냐면서 뭐라고 했던 기억이 있어요. 속으로 여긴 군대도 아닌데, 물론 난 군대를 가보지 않았지만. ‘이곳에 오래 못 있겠다’, ‘여기서 있을 수 없겠구나’하고 문화적 낯섦을 느꼈었죠.
SH
한국 사람들도 그런 문화는 힘들어하죠.
AL
7개월밖에 안 했지만, 정말 많은 사람들이 그만두었고 정신적 트라우마같이 남은 것들도 있었어요. 그래도 어려서 그랬는지 그때 제 얼굴엔 항상 미소가 있었죠.
SH
알렉스는 참 긍정적인 것 같아요.
AL
긍정적이기보단 어렸기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지금이었다면 바로 지쳐서 그냥 나가버렸을 것 같아요. 그리고 프로덕션 회사에 들어갔는데 4명의 작은 프로덕션 회사였는데, 엄청 어두운 사무실에 담배연기가 가득했었어요. 그 회사의 장점은 하나밖에 없었는데 작은 규모여서 정말 다 배웠어요. 촬영, 편집 등 다 배울 수 있었죠. 거기서 일을 하고 프리랜서가 되고 회사를 차릴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죠. 물론 그땐 자신감 많이 떨어져 있다 항상 못한다고 하니까.
SH
버틴 건가요.
AL
버틴 거다. 왜냐하면 돈이 필요했으니까.
SH
한국사람 중에 한국을 떠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알렉스는 한국에서 일했던 이유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다시 미국에 돌아가고 싶진 않았나요?
AL
뉴욕에서 살아왔지만 뉴욕은 정말 비싸고 엄마, 아빠가 고생하는 걸 봤으니까 만만치 않다고 생각했어요. 미국은 사람밖에 그리운 것이 없어요. 미국은 살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었고 진짜 좋은 직장을 구하지 않으면 월세로 남는 게 없었어요.

그렇지만 한국에서 원룸을 구할 때 30만 원(200유로)도 안되는게 좋았죠. 물론 내 침대에서 설거지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작았지만. 미국은 아무리 작아도 100만 원이었어요. 한국에서 이렇게 30만 원(200유로) 내고 살 수 있다는 게 신기했어요.

한국 사람들은 헬 조선이라고 말하지만 내겐 한국이 매력적으로 느껴졌었죠. 그렇게 저는 한국에서 자리를 잡았고, 한국에 오고 싶었던 우리 엄마의 꿈을 이룰 수 있었어요.
SH
알렉스 어머니의 꿈이 한국에 돌아오는 것이었나요?
AL
한국에서 은퇴하고 사는 것이 우리 엄마의 꿈이었죠.
SH
알렉스의 어머니의 삶도 정말 알고 싶어요.
AL
우리 엄마의 스토리는 제 스토리보다 재밌어요. 가장 재밌는 것들은. 엄마가 20대 초반에 뉴욕으로 갔는데, 나는 20대 초반에 한국으로 왔고, 비슷한 시기에 가족이 생겼어요.

심지어 할머니가 60대였을 때, 엄마와 함께 우리를 봐주러 뉴욕에 오셨는데 지금 우리 엄마가 60대에 한국에 와서 손녀를 봐주고 있어요. 고등학교 이후 10년간 떨어져 지낸 엄마와 함께 지내면서 재밌는 사실을 발견하고 있는 중이에요.
SH
엄마에 대한 재미난 사실을 발견하는 중이라고 했는데 가장 익숙했던 엄마에게서 새롭게 느낀 낯섦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AL
재미없는 사실일 수 있는데, 우리 엄마가 편식이 심하다는 것이에요. 저는 항상 엄마에게 자식이었기에 엄마가 편식하는 모습을 본 적 없었죠. 엄마가 주는 음식을 먹었으니까. 양고기, 고수, 순대 내장, 쿠멘 중동 음식을 안 먹으세요. 전 당연히 중동 음식을 먹을 거라고 생각했죠. 그리고 외국에 40년을 살면 고수는 먹을 거라고 생각했었죠.

재밌어요. 엄청 익숙한 사람이지만, 낯선 모습을 발견해서 재밌어요. 10년 동안 엄마와 떨어져 살았지만, 이렇게 다시 가깝게 지내면서 서로 낯설고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는 것 같아요.

반대로, 내게 예민한 모습이 있다고 했죠. 엄마가 기억하는 나는 고등학생이었고 어려운 상황이나 돈 걱정하는 상황이 없었지만 이젠 내가 돈 걱정과 회사 운영으로 예민하게 반응하는 모습에 엄마도 나에 대해서 낯설게 느끼는 걸 봤어요. 저도 내가 그런 모습을 바꿔야 겠다고 생각했죠.
SH
참 긍정적이에요. 낯선 것들을 마주하는 것을 좋아하고 어떨 때는 스스로 바꾸려고 하는 태도가 참 멋있어요.
AL
젊어서 그런 것 같다.
SH
아니다. 이건 젊고 어려서 아니라, 알렉스가 가진 좋은 부분 같다.
AL
음, 모든 사람들은 다르니까. 자기 자신도 모를 때가 있고, 변할 수가 있고, 자기표현이 있는 것 같아요.. 각자 맞는 게 있고 안 맞는 게 있잖아요.
재밌는 사실은 저는 영상을 만드는 일을 하는데 제 아내 은우는 영상을 싫어해요.  제가 만든 작품을 보여줘도 안 봐요. 처음엔 상처를 받았는데, 은우는 다르니까. 나랑 다르고. 안 보고 싶으면 안 봐도 되는 거고, 보면 좋겠지만 그건 내 욕심이니까.

그렇지만 반대로 은우가 좋아하는 데 내가 싫어하면, 은우는 멱살을 잡고 왜 안 좋냐고 할 때가 있어요.
SH
그럼 알렉스는 영상을 찍는게 좋다고 하였는데, 왜 영상을 찍게 되었나요?
AL
내가 표현하고 싶은 방식 중 하나가 영상인데 그게 제대로 전달될 때가 기분 좋고, 남들한테 어떤 순간을 보여줄 수 있는 게 소중하다고 생각해요.

직업으로 선택하게 된 것은 필요가 계속 생길 것 같고 돈이 되니까!
그리고 창의적인 영역이기에 기술적인 부분을 넘어서 완전한 정답이 없다는 것.
SH
맞아요. 완전한 정답은 없지만, 타인에게 보내는 영향은 큰 것 같아요. 아무것도 없을 때는 아무 영향도 주지 않는데, 무언가를 만들 때 그것에 대한 영향은 무시할 수 없죠.
AL
그렇다. 대표적인 사례가 하나 있죠. 내가 좋아하는 DOP 영상 감독의 작품에 실망했었죠. 진짜 잘하는 감독인데 그 영상은 너무 성적이었다. 메시지는 없고, 성적이었다, 내가 제일 싫었던 것은 배경 음악이 아이들이 부르는 동요 ”머리, 어깨, 무릎, 발”(head, shoulders, knees and toes)이었다. 성적인 이미지에 배경 음악을 어린이들이 부르는 동요로 리메이크 하면서 야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걸 보고,

‘메시지가 정말 중요하구나’ 생각하게 되었어요. 내가 만들어야 하는 작품에 대한 책임감을 더 느끼게 되었다.
SH
알렉스의 눈에 낯설게 보이거나 시각적으로 잘 표현해 놓은 오브제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AL
<Lost In Translation(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라는 빌 머레이와 스칼렛 요한슨이 주인공으로 나온 2005년 오래된 영화가 떠올라요. 빌 머레이가 일본에 가서 광고를 찍는 배우로 나와요. 일본이라는 나라에 처음 가서, 새로운 ‘첫’경험들을 하며 보여주는 빌 머레이의 눈빛과 표정은 낯섦 그 자체를 그려냈죠.

‘신기하다. unfamiliar한데 좋다.’라는 느낌으로 내게 한국이 그랬죠.

나에게 낯섦은 좋은 자극이에요. 해보지 못했던 걸 시도하는 것과 같이, 소설을 썼던 사람이 시를 쓰듯. 영상을 하고 있지만, 안 해본 스타일이 있어요.

뮤직비디오와 같은. 해보지 않은 걸 새롭게 표현한다는 것, 가보지 않은 새로운 공간도 결국 좋은 자극이라고 생각해요.

낯선 사람을 만나 상상해보지 못한 대화를 나누는 것, 그것도 모두 좋은 자극이라고 생각해요.





Una Storia Commune
N.5 <Alexander Isacc>

Photography: Archives from Alexander Isacc
Interview: Solhee Ba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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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lhee Baek
알렉스 안녕하세요! 먼저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Alexander Isacc
안녕하세요.뉴욕에서 태어나서 8년째 한국에 거주 중이고 영상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는 딸바보 알렉스라고 합니다.
SH
알렉스는 한국에 사는 외국인으로서 키너와도 비슷한 입장이라고 생각해요.
AL
키너가 가진 이방인이라는 관점과 외국에 사는 한인들의 이야기인데 내게 인터뷰 요청이 와서 나는 한국인이 아닌데 괜찮을까 싶었어요. 나는 내 존재가 애매하다고 생각한 적이 많았거든요.

지금은 약간, 웃긴 말일 수 있는데, 가끔씩은 내 정체성이 반칙이라고 생각했어요. 나는 미국 사람인데 엄마는 한국 사람이었고 그래서 한국 사람이냐고 물어보면 한국 사람이 아니라고 했죠. 하지만 엄마는 한국 사람이라고 하면 그럼 한국 사람 맞지 않냐고 하는데, 제 생각 자체는 미국인이에요. 한국말을 할 수 있고, 문화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지만, 한국 사람이라고 하기엔 내 정체성이 혼란스럽다고 할 수 있죠.
SH
한국말을 정말 잘해요. 한국사람이 아니라고 하지만 정말 편하게 이야기하거든요.
AL
미국에서 태어나 대학을 졸업한 후 한국에 8년째 살고 있어요. 한국에서의 경험을 말할 땐 한국말이 편하고, 어린 시절을 말할 땐 영어가 편해요 제가 프로덕션 다닐 때, 방송국을 다닐 때, 한국에서 사기당할 뻔했을 때처럼 한국에서 겪은 상황을 말할 땐, 한국말이 편하고 영어로 설명할 때는 어렵죠. 뉘앙스가 살지 않아서. 나도 영어 원어민이지만, 그런 디테일들은 한국말이 더 편할 때가 있어요.근데 난 한국 사람이 아니니까 애매하죠.
SH
알렉스가 말하는 한국 사람이 아니라는 말은 국적에 대한 이야기일까요?
AL
그런 것도 있지만, 말 그대로 한국 사람들은 나를 볼 때 한국 사람이라고 생각 안 하죠.
SH
알렉스 자신이 애매하다는 생각을 어릴 때부터 했었나요?
AL
나는 뉴욕 한인타운에서 자랐다. 주변에 한국 사람들이 있었고, 한인교회를 다녔어요.
전부 교포 2세들이라 한국말을 못 했지만 외모는 다 한국 사람이었죠 그래서 저만 달랐어요.
저는 어린 시절 기억은 많이 나지 않지만,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내가 다른 아이들과 생김새가 다르다고 생각하게 됐죠.  그래서 어릴 때부터 왕따는 아니었지만 내가 그들과 다르다는 어떤 것들을 느꼈죠. '얘만 다르다'가 좋을 때도 있긴 했어요. 내 자리가 다른 데 있다고 생각했고 여기는 아니라는 생각을 했어요. 미국은 워낙 다양했기에 학교에선 애매하단 느낌을 받지 않았지만 한국 사람들과 있을 때는 한국 사람이 아니라고 하고, 외국 사람들에겐 나는 한국인이었어요. 내가 그들 눈에는 한국인으로 보인다고 했고 한국 사람들에겐 이집트인으로 보인다고 하더라고요.
SH
다르다는 걸 느끼고 어떤 시도나 노력을 해 본 경험이 있나요?
AL
노력은 있었지만, 한국어를 배우려고 하진 않았어요. 한국 2세 친구들도 한국어를 못했으니까 같이 영어로 대화를 했었죠. 그 당시 우리 동네에선 농구를 많이 해서, 제가 부족하다고 생각하거나 다르다는 걸 농구를 통해 인정을 받으려고 했었어요. 자신감도 생기고 부족한 부분이 커버된다고 생각했죠.
SH
혼란스러웠을 것 같아요.
AL
어머니는 한국인, 아버지는 이집트인, 나는 미국인이어서 정말 혼란스러웠어요. 그리고 저는 이집트에 대해 진짜 아무것도 모른다. 저는 이집트나 한국에 대한 정체성에 대해서 생각할 때 음식이라고 생각했어요. 어떤 때는 이집트 음식, 어떤 때는 한국 음식 그때마다 난 한국 사람, 이집트 사람이구나 생각했죠. 인도 친구 집에 가면 인도 음식을 먹고, 중국 친구 집에 가면 중국 음식을 먹으니까.
SH
알렉스는 어린 시절부터 새롭고 낯선 것들을 자주 마주쳤던 것 같아요. 알렉스에게 “낯설다”라는 말이 가진 의미가 있을까요?
AL
처음에 그 단어를 생각할 때 사람에 대한 표현인 줄 알았어요. “낯설다”, “낯설어”는 사람에 대한 단어라고 생각했죠. 낯을 가린다는 말처럼. 이 표현을 한국에서 많이 듣다 보니 한국 사람들은 낯선 사람을 만나는 게 싫은가 보다 했어요. 나는 반대였거든요. 새로운 사람 만나는 게 즐겁고 그 사람에 대해 알아가고 대화하는 게 좋아요.
SH
공간 혹은 시간, 삶에 어떤 익숙하지 못한 불편함을 느낄 때의 낯설다는 느낌은 받아본 적 있지 않나요?
AL
있어요. 저는 가끔씩은 어떤 행사나 파티에 초대받으면 많이 낯선 곳이라 뻘쭘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민망할 때가 있어요. 그 느낌 자체가 싫은데 억지로 가려고 오히려 노력해요. 갈 때마다 그런 불편함들을 이겨내려고 해요. 내가 이런 곳에 있어도 될까, 나를 위한 자리가 아니라는 생각도 들때도 있어요.
SH
낯섦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나 느낌을 가질 수 있는데, 알렉스는 오히려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AL
저는 한인들과 있었지만, 다들 미국 사람이었기에 그렇게 낯설거나 어렵다는 느낌을 받지 않았어요. 오히려 제가 어렸을 때 한국에 있었다면 더 크게 낯섦을 느꼈을 것 같아요.
SH
그렇다면 알렉스가 처음 한국에 어떻게 오게 되었나요?
AL
그 당시엔 순수한 마음으로 한국에 오게 되었어요. 한국에 오게 된 이유는 한국말을 못 해서, 한국 시골에서 한국어를 배워오겠다고 생각했죠. 한국말을 못 하는 게 싫었다.

우리 엄마가 한국 사람이라고 할 때 한국말 할 줄 아냐 하는데 못한다고 하는 게 너무 싫었다. 춘천에서 1년 동안 살았는데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없었어요.
(그래도 대학시절 부전공으로 한국학을 전공해서 기본적인 대화가 가능했다.)

인상 깊었던 기억은 길을 건너고 있는데 아저씨들이 나를 보고 "I love you"라고 말하는 게 너무 재밌었죠. 제가 뉴욕에 있었을 때 처음 다른 나라 언어를 쓰는 건 주로 욕이었을 텐데 (모든 언어는 욕을 먼저 배우니까), 춘천(한국 시골)아저씨들은 할 줄 아는 영어라도 하고 싶어 보였어요. 제게 I love you라고 하는 모습에서 한국 사람들이 순수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한국이 순수하고 착하다고 느꼈죠.
SH
한국에 대한 첫 이미지가 참 좋았던 것 같아요. 지금도 그런가요?
AL
아니, 그럴 수가 없었죠. 현실이 있었어요. 서울에서 삶을 시작하면서, 방송국에서 예능 프로그램 막내로 7개월 동안 일을 한 적 있었는데 정말 힘들었어요.

방송국에서 일했을 때 나는 ‘이곳에서 어울리지 않는구나’를 깨달았죠. 위에 있는 선배들도 내게 “여기서 일할 수 없다”, ”너한테는 PD는 시키지 않을 거야 너는 다르니까”, “예능은 한국적인 거라서 넌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넌 될 수 없다” 라고 했어요.

속으로는 어차피 그렇게 되고 싶지 않은데, 그냥 뭐라도 배우고 싶었다. 밤새 방송국에서 편집하면서 살고 싶지도 않았고 그런 선배들처럼 되고 싶지도 않았지만 정말 뭐라도 배우고 싶었어요.  그 중 하나 에피소드는 주말 방송이라서 주말은 밤새 작업을 하는데, 너무 씻고 싶었는데 순서를 지켜야 했는데 선배가 와서 먼저 씻으라고 해서 씻었는데 다음 선배가 와서 왜 먼저 씻었냐면서 뭐라고 했던 기억이 있어요. 속으로 여긴 군대도 아닌데, 물론 난 군대를 가보지 않았지만. ‘이곳에 오래 못 있겠다’, ‘여기서 있을 수 없겠구나’하고 문화적 낯섦을 느꼈었죠.
SH
한국 사람들도 그런 문화는 힘들어하죠.
AL
7개월밖에 안 했지만, 정말 많은 사람들이 그만두었고 정신적 트라우마같이 남은 것들도 있었어요. 그래도 어려서 그랬는지 그때 제 얼굴엔 항상 미소가 있었죠.
SH
알렉스는 참 긍정적인 것 같아요.
AL
긍정적이기보단 어렸기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지금이었다면 바로 지쳐서 그냥 나가버렸을 것 같아요. 그리고 프로덕션 회사에 들어갔는데 4명의 작은 프로덕션 회사였는데, 엄청 어두운 사무실에 담배연기가 가득했었어요. 그 회사의 장점은 하나밖에 없었는데 작은 규모여서 정말 다 배웠어요. 촬영, 편집 등 다 배울 수 있었죠. 거기서 일을 하고 프리랜서가 되고 회사를 차릴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죠. 물론 그땐 자신감 많이 떨어져 있다 항상 못한다고 하니까.
SH
버틴 건가요.
AL
버틴 거다. 왜냐하면 돈이 필요했으니까.
SH
한국사람 중에 한국을 떠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알렉스는 한국에서 일했던 이유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다시 미국에 돌아가고 싶진 않았나요?
AL
뉴욕에서 살아왔지만 뉴욕은 정말 비싸고 엄마, 아빠가 고생하는 걸 봤으니까 만만치 않다고 생각했어요. 미국은 사람밖에 그리운 것이 없어요. 미국은 살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었고 진짜 좋은 직장을 구하지 않으면 월세로 남는 게 없었어요.

그렇지만 한국에서 원룸을 구할 때 30만 원(200유로)도 안되는게 좋았죠. 물론 내 침대에서 설거지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작았지만. 미국은 아무리 작아도 100만 원이었어요. 한국에서 이렇게 30만 원(200유로) 내고 살 수 있다는 게 신기했어요.

한국 사람들은 헬 조선이라고 말하지만 내겐 한국이 매력적으로 느껴졌었죠. 그렇게 저는 한국에서 자리를 잡았고, 한국에 오고 싶었던 우리 엄마의 꿈을 이룰 수 있었어요.
SH
알렉스 어머니의 꿈이 한국에 돌아오는 것이었나요?
AL
한국에서 은퇴하고 사는 것이 우리 엄마의 꿈이었죠.
SH
알렉스의 어머니의 삶도 정말 알고 싶어요.
AL
우리 엄마의 스토리는 제 스토리보다 재밌어요. 가장 재밌는 것들은. 엄마가 20대 초반에 뉴욕으로 갔는데, 나는 20대 초반에 한국으로 왔고, 비슷한 시기에 가족이 생겼어요.

심지어 할머니가 60대였을 때, 엄마와 함께 우리를 봐주러 뉴욕에 오셨는데 지금 우리 엄마가 60대에 한국에 와서 손녀를 봐주고 있어요. 고등학교 이후 10년간 떨어져 지낸 엄마와 함께 지내면서 재밌는 사실을 발견하고 있는 중이에요.
SH
엄마에 대한 재미난 사실을 발견하는 중이라고 했는데 가장 익숙했던 엄마에게서 새롭게 느낀 낯섦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AL
재미없는 사실일 수 있는데, 우리 엄마가 편식이 심하다는 것이에요. 저는 항상 엄마에게 자식이었기에 엄마가 편식하는 모습을 본 적 없었죠. 엄마가 주는 음식을 먹었으니까. 양고기, 고수, 순대 내장, 쿠멘 중동 음식을 안 먹으세요. 전 당연히 중동 음식을 먹을 거라고 생각했죠. 그리고 외국에 40년을 살면 고수는 먹을 거라고 생각했었죠.

재밌어요. 엄청 익숙한 사람이지만, 낯선 모습을 발견해서 재밌어요. 10년 동안 엄마와 떨어져 살았지만, 이렇게 다시 가깝게 지내면서 서로 낯설고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는 것 같아요.

반대로, 내게 예민한 모습이 있다고 했죠. 엄마가 기억하는 나는 고등학생이었고 어려운 상황이나 돈 걱정하는 상황이 없었지만 이젠 내가 돈 걱정과 회사 운영으로 예민하게 반응하는 모습에 엄마도 나에 대해서 낯설게 느끼는 걸 봤어요. 저도 내가 그런 모습을 바꿔야 겠다고 생각했죠.
SH
참 긍정적이에요. 낯선 것들을 마주하는 것을 좋아하고 어떨 때는 스스로 바꾸려고 하는 태도가 참 멋있어요.
AL
젊어서 그런 것 같다.
SH
아니다. 이건 젊고 어려서 아니라, 알렉스가 가진 좋은 부분 같다.
AL
음, 모든 사람들은 다르니까. 자기 자신도 모를 때가 있고, 변할 수가 있고, 자기표현이 있는 것 같아요.. 각자 맞는 게 있고 안 맞는 게 있잖아요.
재밌는 사실은 저는 영상을 만드는 일을 하는데 제 아내 은우는 영상을 싫어해요.  제가 만든 작품을 보여줘도 안 봐요. 처음엔 상처를 받았는데, 은우는 다르니까. 나랑 다르고. 안 보고 싶으면 안 봐도 되는 거고, 보면 좋겠지만 그건 내 욕심이니까.

그렇지만 반대로 은우가 좋아하는 데 내가 싫어하면, 은우는 멱살을 잡고 왜 안 좋냐고 할 때가 있어요.
SH
그럼 알렉스는 영상을 찍는게 좋다고 하였는데, 왜 영상을 찍게 되었나요?
AL
내가 표현하고 싶은 방식 중 하나가 영상인데 그게 제대로 전달될 때가 기분 좋고, 남들한테 어떤 순간을 보여줄 수 있는 게 소중하다고 생각해요.

직업으로 선택하게 된 것은 필요가 계속 생길 것 같고 돈이 되니까!
그리고 창의적인 영역이기에 기술적인 부분을 넘어서 완전한 정답이 없다는 것.
SH
맞아요. 완전한 정답은 없지만, 타인에게 보내는 영향은 큰 것 같아요. 아무것도 없을 때는 아무 영향도 주지 않는데, 무언가를 만들 때 그것에 대한 영향은 무시할 수 없죠.
AL
그렇다. 대표적인 사례가 하나 있죠. 내가 좋아하는 DOP 영상 감독의 작품에 실망했었죠. 진짜 잘하는 감독인데 그 영상은 너무 성적이었다. 메시지는 없고, 성적이었다, 내가 제일 싫었던 것은 배경 음악이 아이들이 부르는 동요 ”머리, 어깨, 무릎, 발”(head, shoulders, knees and toes)이었다. 성적인 이미지에 배경 음악을 어린이들이 부르는 동요로 리메이크 하면서 야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걸 보고,

‘메시지가 정말 중요하구나’ 생각하게 되었어요. 내가 만들어야 하는 작품에 대한 책임감을 더 느끼게 되었다.
SH
알렉스의 눈에 낯설게 보이거나 시각적으로 잘 표현해 놓은 오브제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AL
<Lost In Translation(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라는 빌 머레이와 스칼렛 요한슨이 주인공으로 나온 2005년 오래된 영화가 떠올라요. 빌 머레이가 일본에 가서 광고를 찍는 배우로 나와요. 일본이라는 나라에 처음 가서, 새로운 ‘첫’경험들을 하며 보여주는 빌 머레이의 눈빛과 표정은 낯섦 그 자체를 그려냈죠.

‘신기하다. unfamiliar한데 좋다.’라는 느낌으로 내게 한국이 그랬죠.

나에게 낯섦은 좋은 자극이에요. 해보지 못했던 걸 시도하는 것과 같이, 소설을 썼던 사람이 시를 쓰듯. 영상을 하고 있지만, 안 해본 스타일이 있어요.

뮤직비디오와 같은. 해보지 않은 걸 새롭게 표현한다는 것, 가보지 않은 새로운 공간도 결국 좋은 자극이라고 생각해요.

낯선 사람을 만나 상상해보지 못한 대화를 나누는 것, 그것도 모두 좋은 자극이라고 생각해요.


Una Storia Comune 
N.5 <Alexander Isacc>


Photography: Archives from Alexander Isacc
Interview: Solhee Bae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