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비사비의 역사는 불교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1191년 일본 규슈에, Eisai스님이 중국에서 일본으로 돌아왔으며, 일본 최초의 선불사(善佛寺)를 만들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선불교는 명상의 자세를 중심으로  하는 복합적인 철학 세계를 가지고 있으며, 삶의 끊임없는 순환과 불완전한 형태의 자연을 이해하고 우리 개인의 공허함을 이해하는 통찰력을 제시하였다. 선불교는 이후에 발전되어 와비사비의 철학적 토대가 되었다.

14세기가 되어서야 일본에서 와비사비라는 단어가 탄생하였다.‘와비’는 원래 와비는 세상과 동떨어져 자연 속에서 홀로 지내는 참담함과 낙담하고 허탈한 마음 그리고 생기 없는 감정의 상태를 뜻했고, 그 의미는 이제 진화되어, (한 단어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외로움과 행복감의 완전한 상태라는 표현으로 사용되었고,  ‘사비’는 본래 쓸쓸하고 수척하며 메마른 것을 나타냈지만, 현재는 어떤 물체가 시간이 지나면서 나타내는 아름다움을 뜻하고 있다.  선불교, 다도와 결합되고 긴 역사를 거치면서 그 경계는 모호해져 하나의 단어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교토 1488년, 다도의 창시자로 알려진 무라타 쥬코는 자신의 제자에게 편지 한 장을 적었는데, 이 편지는 추후 마음의 글(心の文)로 알려지게 되며, 이 글에서 차를 마시는 이상적인 방법인 다도를 정의하고 와비사비의 미학을 설명하게 된다. 다도는 승려들이 오랜 시간 동안선한 명상을 실천하기 위해 깨어 있는 방법으로 시작되었지만, 이후에는 군벌, 즉 쇼군들의 지배 계급에 의해 남용되었고 중국에서 들여온 값비싼 그릇과 도자기를 과시하는 방법으로 활용되었습니다. 다도 의식은 점점 더 화려해졌고 영적인 뿌리에서 멀리 벗어나게 되었다. 그러므로 쥬코는 다시 바로잡고자,  와비사비의 정신을 염두에 두고 다도를 재설계했다. 이 정신이 현재 우리가 생각하는 와비사비의 시작이 되었다고 할 수있다.

센노 리큐(Sen no Rikyu)는 봉건 제국의 전쟁 파벌들을 통합한 강력한 군벌인 도요 토미 히데요시(Toyotomi hideyoshi)를 섬기는 인물이었다. 와비사비의 정신을 가장 잘 표현하기 위해 자주 사용되는 이야기는 대부분 그의 삶에서 따온 것이며, 쥬코와 함께 센노 리큐는 와비사비의  정신의 설립자들로써 일본에서 근대 다도의 아버지들로써 존경받고 있다. 1582년 도요토미는 나라의 평화를 위해 도움을 줄수 있는 다도를 만들기 원하였고 그것을 리큐에게 의뢰하였다. 어느 날, 리큐는 자신의 마당을 청소하라고 한 아이에게 시켰고, 그 어린소년은 하루 종일 집과 정원의 구석구석을 쓸고 닦기 위해 일했다. 리큐가 점검을 위해 다가갔을 때, 그는 순간 손을 뻗어 단풍나무를 흔들었는데,. 떨어진 나뭇잎이 흩뿌려져 아름다운 장면을 만들어냈으며, 바로 그 순간 와비사비의 정신이 탄생되었다;  인공과 자연, 수완 과 무작위는 결합되어 아름다움과 지혜의 완벽한 표현으로 재탄생했다.